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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그 여섯번째 에피소드 - 김우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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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3-04 17:09 조회 3,3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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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교수의 중남미 여행 .6] 건축·미술 등 예술혼 가득한 도시들

빨간지붕·하얀벽·자갈도로…고색창연한 유럽 온 듯
광산·수도·성곽 등 3가지 유형으로 도시 발달
발코니·아치기둥·안뜰 공통적으로 갖춰


볼리비아의 수크레시. 350년 전 은광으로 이룩한 부로 건설하였다. 붉은 지붕과 흰색 담장이 스페인의 남부지방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내게 흔히 묻는다. "중남미는 괜찮냐? 거긴 뭐가 그리 좋아 가느냐?"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거기에는 동양인의 냄새가 묻어나는 고대 문명이 있는가 하면, 그윽한 전통의 유럽도 같이 있답니다. 한 지역에서 세 대륙을 경험하는 건 신나는 일이랍니다." 그렇다. 그곳에는 수세기에 걸친 유럽의 영향이 현재로서 모두 존재한다. 막연한 상식과 두려움을 안고 중남미에 첫발을 디딘 순간 대부분 놀라움 속에 혼동을 겪는다. 우선, 100~400년이 된 고색창연한 유럽풍 도시에 놀라고, 그 한편에서 구걸하는 인디오 아이들의 모습이 생경스럽기 때문이다. 거무튀튀한 피부의 꾀죄죄한 사람만을 상상하며 왔는데, 우아하고 그윽한 박물관과 미술관의 디스플레이 기법에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8년 전 대구·경북지역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2주일간 마야 문화 탐방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느 지방 박물관에서 일행 중 몇몇 역사고고학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박물관은 창고 수준이다." 당시만 해도 박물관 투자나 전시 문화가 경제 발전 정도에 걸맞지 않은 수준이니 그런 혹평을 들을 만하단다. 유명한 어느 동양화가가 중남미를 다녀와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남미는 내게 황홀의 덩어리였고 색채의 교사, 불멸의 정신이었고 영혼의 땅이었다"고 말한다. 적절한 표현이다. 어디든 그 지역 특유의 색채를 잘 보여주는 것은 예술 작품들이다. 예술혼이 가득한 그림과 건축물이 남아있는 중남미는 특히 더 그렇다. 작품마다 '유럽 + α'가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유럽풍 도시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유럽인이 건설한 광산 도시들이다. 중남미 정복 초기부터 유럽인들은 은광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화폐의 재료로 사용되어 큰 가치를 지녔던 은이 넘쳐나니 거부가 속출했고, 이들은 과시용으로 저택을 짓고, 사회 환원용으로 가톨릭교회에도 많은 기부를 하여, 그 결과 화려한 교회당이 곳곳에 건립되었다. 광산 지역은 험준한 산지이다 보니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산비탈에 미로 같은 골목길을 내고 그 양쪽에 건물을 세웠다. 또 돈이 넘치니 건축물 안팎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였고, 유럽에서 각종 조각품과 그림을 사들여 장식을 하였다. 멕시코의 타스코와 과나화토, 볼리비아의 포토씨와 수크레 등이 그 예다. 이들 도시는 웅장한 맛은 없으나 섬세하고 찬란함의 극치를 이룬다. 은은한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오래된 포석(鋪石) 길을 걷노라면 왁자지껄한 노천 카페 한편에선 한 밤의 세레나데가 들려온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나 프랑스의 아비뇽처럼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고, 거리의 색조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아니면 스페인의 세빌리아같은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유형은 효율적인 식민 통치를 위해 당시 스페인 국왕의 칙령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건설된 도시들이다. 도시 중심부에 광장을 두고, 행정관청, 대성당, 시장 등이 배치된 형태의 도시들이다. 기후 좋고, 비옥한 곳에 총독부나 부왕청(副王廳), 기타 산업 전진 기지 등을 둔 것인데, 이는 중남미 각 지역의 수도 기능을 하던 곳이다. 중미의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메리다, 안티과 과테말라, 남미의 리마, 보고타, 키토,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이 이 유형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세 번째의 유형은 카리브해 연안에 건설된 요새 및 성곽도시들이다. 중남미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반출되는 금은보화를 노린 해적들의 노략질이 성행하자, 이를 막고자 여기저기에 이런 도시들이 생겨난 것이다. 멕시코의 캄페체, 쿠바의 하바나,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의 도시들은 거의가 자갈돌로 포장된 도로를 갖추었으며, 스페인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기와와


[사진: 전형적인 스페인식 파티오. 중남미 공공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뜰. 아치식 기둥이 아름답고 안정감을 준다. ]

[사진: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바로크와 신고전주의가 혼합된 양식의 400년된 건물. 추기경 모자 모양의 쌍동이 탑이 이채롭다. ]

[사진: 쿠바의 학술원. 1920년대에 완공한 옛 정부청사. 백악관과 프랑스 국립 현충원 건축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

[사진: 프레스코화. 멕시코의 옛 국립 고아원 건물에 있는 오로스코의 벽화. 총 53개의 작품으로 멕시코의 해방사를 그리고 있다. ]


하얀 벽을 사용한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가정집부터 상가, 수녀원, 성당, 관공서 건물에 이르기까지 대개의 건축물은 그 규모나 양식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발코니, 아치형 기둥, 파티오(안뜰의 일종)는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다.

건축 양식의 면에서 보면, 16세기부터 부왕령(副王領)의 중심지였던 멕시코와 페루에서는 스페인에서 인기를 끌던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후기 고딕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고전적 양식이 채택되었다. 이어지는 17~18세기 말에는 스페인풍의 변형 바로크 양식인 '추리게레스크' 양식이 유행하였으며, 신대륙 점령의 명분인 토착민 전도를 위해 화려한 타입의 교회 건축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종래에는 '바로크+로마네스크+고딕+근대'의 제 양식이 혼재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후발 주자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엔 19세기 들어서야 대성당이 들어서고, 넘치는 농축산 자원으로 부를 쌓아 스페인뿐 아니라 당시에 유럽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여왔다. 19세기 말엽에는 이탈리아를 필두로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들어왔다. '파리와 마드리드 그리고 브뤼셀을 합쳐놓은 것 같은 도시'라는 평을 들을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프랑스 파리보다 더 화려한 유럽풍 도시가 되었다. 연극, 오페라,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콜론극장은 아름다운 건축 디자인으로 밀라노의 라스칼라, 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 파리 국립 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상영한 바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 평생을 탱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노(老) 연주가들이 합동 연주회를 열었던 무대도 바로 이 극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인들은 지금도 남미보다는 유럽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이웃 라티노들로부터 비아냥거림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고 있다.

흔히 라틴 미술이라 불리는 중남미 미술은 수세기에 걸친 식민 기간 중 유럽의 것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고, 외래 사조의 절대적 영향 아래, 붐소설로 대표되는 문학이나 라틴 댄스곡 위주의 음악처럼 독자적 장르 구축을 하지 못하였다. 식민의 목적이 가톨릭 전교인지라, 초기에는 종교 미술이 지배적이었고, 도시마다 건축물 외벽이나 천장에는 유럽에서 직수입한 르네상스풍의 프레스코 벽화를 남겨놓았다. 벽에 바른 석회가 마르기 전 축축할 때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역사적 에피소드를 그려놓은 이 그림들은 후일 중남미 벽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식민지 통치가 안정된 이후에는 바로크풍의 화려한 회화 작품이 주를 이룬다.

라틴 현대 미술은 원주민, 유럽, 아프리카의 문화가 결합하여 강렬함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카리브해 대중 미술이다. 이들에게는 종교가 곧 생활이고, 삶 그 자체가 예술이다. 카리브해의 현란한 열대어처럼 라틴 현대 미술은 컬러풀하다.

특기할 사항은 멕시코에서 1910년의 농민 혁명 이후에 서민을 계도하기 위한 벽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점인데, 이는 프레스코화가 인기 있는 장르로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멕시코 미술 르네상스의 3대 대가인 디에고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의 작품은 20세기 초중반에 세계를 풍미하였다. 이들은 장중하면서도 사실적인 기법으로 라틴 민중의 시각과 정신을 벽화에 드라마틱하게 구현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중남미 미술은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할 태생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문화의 모체인 유럽과 이웃 강국인 미국을 넘어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앞에 언급한 모든 콜로니얼풍 도시는 예외없이 우리의 경주나 해인사처럼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유산으로 공인을 받아 세계 각지로부터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어학부 교수)

2009-02-19 08:09:03 입력
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plan/article.shtml?id=20090219.010220804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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