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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기행 - 인종의 도가니 - 김 우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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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3-04 17:08 조회 3,2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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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에서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처럼 원주민인 인디오 비율이 높은 나라나 지방을 다니다 보면 뭔가 모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우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망울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그 중엔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두리번형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그야말로 '나는 천사표'임을 자랑하는 듯한 선한 눈을 가졌다. 외견상 가난에 찌든 모습이 역력함에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뿌리가 수 만년전에 우리의 먼 조상이기도 한 몽골로이드 계통의 사람들이 사냥감을 쫓아 얼어붙은 베링 해협을 건너와서 퍼진 인종이라서 그런가?

우리나라 아기들이 갖고 있는 몽고반점을 그들도 갖고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이 되고 있지는 않으나 수많은 중남미 원주민 언어의 모양새를 보면 한국어가 속한 알타이어 계통과 흡사하다.

시골 마을 장터나 도회지 정류장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아기 업은 여인들이나 빨랫감을 머리위에 이고 냇가로 향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 한국의 고향 어머니가 떠오른다.

호박을 이고 있는 초가집 앞뜰에서 부지런히 모이를 쪼는 닭과 병아리의 정경을 보고 있으면 비행기로 20시간은 걸리는 지구 저 반대편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한다.

우리 것과 너무나도 흡사한 윷놀이와 고인돌, 벽화 속의 상투 튼 사람들, 솟대 신앙, 용 모양의 동물 신화 등…. 여러 분야에서 고고인류학적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아직 뚜렷한 물증을 못 찾아낸 것이 아쉽긴 하지만, 중남미 여기저기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갖가지 비슷한 문화의 흔적을 살피노라면 자꾸만 '고대 한류'의 영향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중남미에서 가장 크고 잘 되어있다는 멕시코시티의 인류학박물관을 방문해 본 한국의 전문가들 중에는 첫눈에 전시물에서 동양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그렇다. 같은 조상의 피와 유전자, 그리고 풍습을 공유하였기에 그들에게서 나도 모르게 친밀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도 서양인보다는 우리 동양인에 대해 더 호감을 갖고 대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알려진 것은 다 아시다시피 콜럼버스의 계획에 어긋난 항해의 결과이다. 우리의 역사책에서는 이 사실을 유럽인의 시각에서 붙인 '발견'이라는 말로 다루고 있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좋게 보아 '진출과 개척'이고, 엄격히 표현하자면 '정복과 약탈'이었다. 유럽인들이 내세운 개화와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혹독한 착취를 겪기도 하고, 분할 통치식 이간책에 이용만 당하고 자기들끼리 갈가리 찢고 싸우기도 하였다. 필연적으로 태어난 메스티소(mestizo)란 이름의 혼혈인들은 조선시대의 양반집 서자 모양으로 상류 사회로의 진입을 힘겨워하면서도 가해자 아버지와 피해자 어머니 양쪽 그 어느 편을 욕할 수도, 칭찬할 수도 없는 정체성의 혼란을 대물림으로 겪으며 지내왔다.

더운 카리브 해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하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들여왔으며, 운하나 철도 공사 등을 위해서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인구 대국에서 인부들을 대거 수입하였다. 아이티는 현재 중남미 최빈국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남미 최초로 순종 흑인 스스로의 힘으로 흑인 독립국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쿠바나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흑인과 백인간의 혼혈이 활발하여 흔히 초콜릿 색이라고 불리는 피부를


[사진1: 메스티소 무희와 라틴 색조.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 색깔이 아랍을 거쳐 스페인에 소개되고, 이후 중남미에 전파되었다. ]
[사진2: 중남미에선 미국과 같은 인종 갈등이 거의 없다. 작가 미상의 브라질 작품 '흑 백연인들'. ]

가진 물라토(mulato)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축구 귀재 호나우드가 바로 순종 흑인이 아닌 물라토이다. 이런 면에선 미국의 전설적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사실 흑인이 아니라 물라토라고 해야 맞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과테말라나 온두라스의 카리브 연안 지방엔 200년쯤 전에 난파된 노예선에서 탈출한 흑인들이 사방에 퍼져 인디오 여인들과 연을 맺으며 정착한 결과 태어난 가리후나족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아주 기이하게도 아들은 아프리카계의 언어를, 딸은 인디오의 언어를 답습하여 별도의 남녀 고유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식민 초기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가족 단위로 백인 남녀가 함께 어울려 이민 온 미국과 달리 군인, 탐험가, 관리, 상인 등 주로 남자들만 이민 온 중남미에서는 원주민 여자들과 자연스레 섞이게 됨으로써 인종간의 갈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미국 거리에서 흑인과 백인이 손잡고 데이트하는 것은 큰 관심거리일지 몰라도 브라질 같은 데서는 전철 안에서 흑백 남녀가 열렬히 키스를 나누고 있어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메스티소 및 물라토라고 하는 새로운 인종이 '개척'의 열매이던, '정복'의 결과이던 그들은 이제 중남미 대부분 나라에서 다수를 점하면서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많은 메스티소 국가에서 소수의 백인이 파워엘리트 그룹을 이루고 있지만 그 구조와 인종간 장벽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멕시코, 볼리비아에서는 이미 순수 인디오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였고, 페루 국민은 순종 일본인과 인디오를 대통령으로 뽑기도 하였다.

생물학적인 혼혈은 새로운 인종의 출현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맘보, 삼바, 쿰비아, 탱고 같은 고전적 춤부터 람바다, 레게 같은 현대식까지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대중 사교춤의 대부분이 중남미에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프리카의 격렬한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유럽의 현악기가 어우러졌고, 원주민의 낭만적 피리 소리까지 보태져서 라틴 음악이 탄생하여 뉴욕을 발판으로 삼아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니 중남미는 인터넷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문화의 글로벌화를 선도한 셈이다.

혼혈은 융합이며 동시에 다양화를 뜻한다. 중남미에서 노벨상 중에서도 유독 문학상 수상이 많은 것도 이 융합과 다양화 때문이다. 다양한 주제와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그림도 그의 산물 아닌가? 인종간의 갈등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가 말하는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이라는 말도 잘 못 듣는다. 금요일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댄스파티를 벌인다. 부자가 근사한 호텔에서 파티를 연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허름한 테이블에 맥주 한 병과 카세트 테이프만 있어도 오케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기도 한다. 쟁반국수니 속셈학원이니 한글 문구가 선명한 구닥다리 수입 봉고차라도 울긋불긋 장식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면 그게 자랑거리다.

'Living la vida loca'(미친 삶을 살며)로 유명한 리키 마틴을 배출한 카리브 해의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영토이지만 정서상으로는 완전 히스패닉이요, 라틴 기질의 대표주자다. 이러한 푸에르토리코와 중미 고대 문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올메카(Olmeca)의 나라 멕시코, 쿰비아 춤으로 유명한 콜롬비아가 행복지수 높은 국가 최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무를 즐겼다는 백의민족 한국인들의 정과 신바람 문화도 이들과 상통하는 것 아닌가? 자 이제 다 함께 그들의 문화 원류와 행복의 원천을 찾아 떠나기로 하자.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학부 교수
[영남일보, 1월 20일자: 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culture/article.shtml?id=20090115.010220803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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